나무의 뿌리는 땅 밑에서 수많은 가지를 뒤엉키며 생존해 나간다. 우리 눈에 비치는 나무의 줄기가 올곧게 자라고 있는 모습과 달리, 뿌리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엉켜 서로 연결되며 성장하고 있다. 뿌리는 제각각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공생한다. 뿌리의 근원과 나무 줄기,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관계들을 살펴보면, 인간 삶과의 유사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경험하는 모든 관계성을 함축한다. 이 전시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영혼'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 위 모든 생명과 사물이 하나의 구성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 큰 숲의 관계성에서 '관계 맺기'와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ᅠ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는 '관계'는 우리의 삶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까? 일면식이 없던 사람과 우연히 지인이 되고, 친했던 친구와 멀어지기도 하며, 심지어 비객체와 소통을 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관계라고 하면 우리가 바라는 관계의 풍경은 무엇일까? ᅠ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고유진 작가는 '실'의 물리적 특징에 기반해 의미론적으로 접근한다. 그동안 고유진은 어떤 대상을 재현해내는 것보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며 자기 자신의 근원이 되는 기억의 문제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다. 즉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중첩되는 과정을 실의 직조작업으로 표현했었다. 이 전시 또한 그러한 방법론에 주목했다. 이번 전시에서 고유진은 기존의 '자기 내면'에 중첩되었던 작업 연구를 넘어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를 맺는 과정과 관계성을 구현한다. < 실과 바늘 >(2022)에서 고유진은 물에 녹는 실을 이용하여 재봉질한다. 그리고 그녀는 재봉질 된 실을 물에 녹여 없애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 반복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실타래를 그물망처럼 늘어뜨려 놓고, 관람객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실 구조물은 나무 뿌리, 거미줄, 실뜨기 같은 것들을 연상케 한다. 모두 쉽게 풀어나가기 어렵다. 작가는 이 실타래를 풀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를 넘어, 있는 그대로 그 곳에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공생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를 기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타자와 항상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환기하고, 또 다른 관계 맺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ᅠ 하나의 사회를 보여주는 듯한 고유진의 직조 공간 안에서 관계의 구조를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엉킨 실 속을 자유로이 거닐며 어디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복잡미묘한 연결점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ᅠ 《영혼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여러 '관계'들의 형태와 양상 등을 들여다보며 바쁜 일상 속 소중한 관계에 관해 질문한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관계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보다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변방의 것들과 소통을 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비록 의미가 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여러 면에서 모든 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점들이 만나 선이 되는 것처럼, 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점들이 만나 선이 되는 것처럼, 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로. (글_강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