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노트
“공간적 영향이 고려되지 않은 라캉의 시선 안에 갇힌 영화 관객은 엿보는 자(voyeur)가 된다. 반면에 site-seeing에서 관객은, 영화의 공간적 육체적(spatio-corporeal) 동원으로 인해 오히려 촉각적이고 감정적인 지형을 가로지르는 승객, 항해자(voyageur)가 된다.“ 줄리아나 브루노, Atlas of Emotion : Journeys in Art, Architecture, and Film (New York :Verso, 2002), 15-16
언제부터인가 작업의 많은 과정이 모니터 안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내 손은 재료를 직접 다루는 대신 마우스를 클릭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매끄러운 화면 위에 미끄러진다. 오늘날 조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모든 것은 매끄러운 화면 위를 미끄러지는 감각으로 대체될까? 스크린의 몸체가 완벽히 투명하게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손의 감각은 허공을 휘젓는 감각으로 대체될까?
이 작업의 제목인 Site-Seeing은 줄리아나 브루노의 텍스트에서 가져왔다. 브루노에게 촉각은 본질적으로 건축적이고 공간적인 감각으로 평평한 표면과 그것의 텍스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공간이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표면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공간에서 신체의 위치 변화는 건축과 영화적 경험의 토대를 형성한다. 도시를 산책하는 사람이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서로 다른 순간과 장소를 연결하듯이 영화의 관객 역시 영화 속의 경로를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며 상상 속에서 서로 다른 순간과 장소를 연결한다.
모니터 안의 공간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상상했다. 전시공간의 사방의 벽면에 골목길을 걸으며 촬영한 영상이 영사되며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 같은 화면이 펼쳐진다. 전시공간은 사방으로 난 길이 만나는 교차로가 된다. 공간에는 병풍과 같은 형태의 스크린이 놓여져 있다. 스크린은 16:9의 표준 화면 비율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면에 투과율이 다른 거울 필름과 다이아크로익 필름이 부착되어있다. 이 스크린은 벽면에 영사되는 영상을 반사함으로써 영상을 스크린 위로 가져온다. 편집프로그램의 타임라인처럼 서로 다른 시공간이 모여져 쌓이는 접면이 된다. 관객은 바퀴가 달린 스크린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고, 펴고, 이동하며 스크린의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 관객이 스크린을 또 다른 신체처럼 대면하기를 원했다. 관객의 몸과 시선의 위치가 바뀌고 스크린의 형태가 변함에 따라 스크린에 모여진 시공간의 배열도 함께 변한다.
